부석면 도비산의 부석사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검은 바위섬 검은여, 옛날 바다였을 당시에 별로 높아 보이지 않으면서도 사리 밀물 만조 때에도 물에 잠기지 않아 사람들이 뜬 바위 또는 부석(浮石)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부석'이란 지명의 유래가 되기도한 검은여는 1982년 10월 26일 서산 B지구 방조제 사이를 유조선으로 막은 상태에서 유조선 탱크에 바닷물을 넣어 가라앉혀 물막이 작업을 쉽게 한 일명 정주영 유조선공법으로 방조제 공사가 완공되어 육지가 되었다.
1980년대 초 까지도 바다였던 이곳이 서산 B지구 방조제 공사 후 논으로 변했다.
어린 시절 음력 보름과 그믐 사리 때, 썰물 시간에 어른들을 따라 2km 가까운 갯벌을 걸어 검은여 근처까지 가면 수많은 종류의 바다 생물을 만날 수 있었다. 어른들은 장대 두 개를 V자형으로 만들어 장대 사이에 그물을 설치하여 허리춤 닿는 깊이에서 밀고 다니다 들어 올리면 꽃게, 박하지, 갑오징어, 대하를 비롯해 동작이 느린 잡고기 들이 등에 지고 나오기 힘들 정도로 많이 잡혔었다. 썰물로 드러난 모래 섞인 땅에서는 소라를 줍기도 하고 주먹 크기의 피조개, 어른 손바닥보다도 큰 키조개도 있었고, 어른들이 삽으로 땅을 파서 뒤집으면 아이들은 연탄구멍 같은 곳에 살던 작은 가재 모양의 쏙(설게)을 줍느라 바빴던 기억도 있다. 바지락은 너무 많아서 겉흙을 조금 걷어낸 후 자갈 더미 같은 바지락 섞인 흙을 쓸어 모아 그물자루에 담은 후 물에서 흔들면 흙과 모래가 빠져나가고 바지락만 남아서 금방 큰바구니에 한가득 들고 나오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뿐인가 바닷가 모래사장과 갯벌이 만나는 바닷가에서도 꼬막을 잡았고, 번데기처럼 길에서 팔던 다슬기 비슷한 고동도 너무 흔해 우리는 먹지도 않을 정도였으며, 겨울에는 수문통로 개울의 돌에서 파래도 뜯을 수 있었다. 맨손에 바구니 하나만 들고 가도 반찬거리를 주워올 수 있었던 바다였는데, 너무 순박했었던 충남 태안 송암, 반곡 주민들은 안타깝게도 보상하나 없이 추억이 깃든 귀한 바다를 잃었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도비산(해발 352.8m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
길가에 보이는 너구리 화장실
, 너구리들은 정해진 곳에 배변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태의 팔봉산(八峰山, 해발 361.5m, 충남 서산시 팔봉면)
초등학교 시절, 할아버지와 대문 앞에 앉아 팔봉산을 바라보는데 건너편 언덕의 나무 하나가 거슬린다고 하시며 함께 가서 소나무 한그루를 베어냈던 추억도 있어 팔봉산을 볼때면 할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태안군과 서산시 사이에 위치한 부남호의 철새들
사진 중앙 사일로가 보이는 곳은 안면도 가는 길의 서산 B지구 방조제 입구 현대서산농장, 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당시 2차에 걸쳐 몰고 갔던 천마리(1001마리)의 소들은 저곳 서산농장에서 키운 소들이었다(북한에 보낸 소를 1000마리가 아닌 1001마리로 한 것은 1000은 끝이 0이기 때문에 대북관계의 끝을 의미할 수 있으니, 재출발을 뜻하는 1을 더해 1001마리로 하였다고 한다)
부남호를 가로질러 검은여 가는 길
부남호와 팔봉산
왼쪽 아파트 같은 건물이 현대 The Links CC 테라스 골프 빌리지, 오른쪽 하얀 건물은 클럽하우스
태안읍을 내려다보는 백화산(284m), 예전에는 산 위에 레이더가 빙빙 돌아가는 미군 부대도 있었다.
AI 방지를 위한 출입통제 안내문(자동차 길로만 걸어 다녔습니다.ㅠㅠ)
옛날 바다 가운데 섬으로 보이던 때와 다르게 가운데 부분이 훼손 된 듯 얕아진 검은여
가운데 정자는 바다였을 때는 없었던 것으로 육지화 된 후 거문여 보존위원회의 노력으로 현대건설의 협찬을 받아 지어진 듯하다.
새매의 일종인 황조롱이 인 듯, (휴대폰 카메라를 최대한 확대하여 흐리멍덩한 사진)
[검은여의 유래]
검은 바위에는 신라 고승 의상대사와 그를 흠모한 당나라 여인(선묘낭자)의 애틋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
의상대사가 문무왕 11년(671)에 중국 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귀국할 때 대사를 사모하던 당나라 젊은 여인(선묘 낭자)이 결혼을 애원했으나, 거절하고 배에 오르자 선묘 낭자는 바다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라로 돌아온 의상대사는 선묘 낭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문무왕 17년(677)에 현재 부석면 도비산에 사찰을 창건하려 하였으나, 마을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어려움을 겪던 중
갑자기 천둥 번개가 일고 검고 큰 바위가 공중에 나타나 “너희들이 절 짓는 일을 반대하면 큰 재앙을 내리겠다”는 호통 소리가 들리자 주민들의 반대가 멈췄고 부석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공중을 떠돌던 큰 바위는 부석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이곳에 떨어져 검은여가 되었다고 한다.
간척공사로 인해 지금은 물에 뜬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검은여에 얽혀 있는 선묘 낭자의 넋을 달래고 지역 번영을 염원하는 행사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보존회를 만들고 매년 4월 3일 제를 올리고 있다.
부석정 위에서 본 백화산
부석정 위에서 본 팔봉산
바위에 붙은 굴 껍데기가 이곳이 바닷물에 잠겼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서산 바이오 웰빙 특구 일반산업단지도 가깝게 보인다
V자 모양으로 나는 기러기 떼, 우리나라에는 10월 쯤에 와서 이듬해 3월에 떠난다
가볍게 산책을 나섰다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들이라서 화질이 ㅠ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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