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 와부읍 송촌리 운길산 중턱의 수종사

북한강변 큰 길에서 초보 운전자는 겁이 날 정도의 급경사 길을 2km 정도 올라가면 작은 주차장이 있고 아래 사진과 같은 수종사 입구가 나타납니다.

 

수종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459년(세조 5) 세조와 관련된 창건설화가 전해오는데, 세조가 금강산을 구경하고 수로로 한강을 따라 환궁하던 도중 양수리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와 다음날 조사해보니 운길산에 고찰의 유적지가 있다고 하여 가보았다. 그 바위굴 속에서 16나한을 발견했으며 굴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암벽을 울려 종소리처럼 들린 것임을 알게 되어, 이곳에 돌계단을 쌓고 절을 지어 수종사라고 했다고 한다.[브리태니커]

 

 

 

 

불이문 안쪽의 사천왕도(?)

 

 

 

 

짐을 나르던 케이블카인데... 지금은 사찰 뒷쪽으로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어 사용하지 않는 듯합니다.

 

 

사찰 입구의 응진전...

 

 

 

 

응진전 앞에서 본 전경... 멀리 보이는 큰건물이 대웅전, 오른쪽이 전망 좋은 다실 삼정헌입니다.

 

 

 

전망 좋은 다실 삼정헌입니다.  

 

 

실내가 아름답고 전망이 매우 뛰어난데 사진촬영 금지 안내문이 보여서...  차마시는데 방해 안되게 멀리서 촬영했습니다...^^

 

북한강 중앙선철교와 양수교 그리고 멀리 신양수대교와 두물머리도 보입니다... 

 

대웅전 옆에 있는 부도와 오층석탑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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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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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군자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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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2013.10.14 19: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크진 않지만 현등사만의 매력이 있네요 :) 가봐야겠어요~

    2015.09.04 11: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보행자의 천국이라 불리는 모스크바 문화 예술의 장소 아르바트거리

한국의 대학로와 비슷한 느낌인데 빅토르 최의 추모벽과 푸쉬킨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거리였습니다.

 

빅토르 최(Viktor Tsoi) 추모의 벽

한국계 러시아인으로, 소련이 해체되던 무렵 러시아의 영웅으로 불렸던 빅토르 최는 1962년 카자흐스탄공화국 크질오르다에서 한인 2세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러시아인'입니다. 그런데 미술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내에서 팔라타 세스토이​라는 록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다가, 반국가적인 노래를 연주한다는 이유로 퇴교당하고, 그 뒤 기술학교에 다시 입학해 목각을 전공하는 학생이 되었지만, 빅토르 최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1982년 키노​(KINO)라는 역사적인 록 그룹을 결성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발표한 <혈액형>이라는 노래는 곧 수많은 러시아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습니다.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와 '키노'의 인기는 실로 폭발적인 것이었지만, 빅토르 최의 노래 중에는 유독 자유와 저항을 외치는 가사들이 많다고 합니다.

 

 

빅토르 최 50주년 생일날(2012.6.21) 추모벽 앞 추모공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Oy80MJinE8

 

 

 

이후 빅토르 최의 인기와 젊은이들의 저항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사건은 1990년 6월 24일, 모스크바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키노의 공연에서 벌어졌습니다. 무려 1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빅토르 최와 키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관중들은 빅토르 최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변화와 자유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경기장 주변 경찰 병력도 누를 수 없을 정도로 컸고, 곧 대규모 시위로 번지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빅토르 최는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인 KGB가 감시하는 최고의 요주의 인물이 되었는데 1990년 8월 15일, 빅토르 최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의 나이, 불과 스물여덟 살이었습니다.

 

빅토르 최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소련의 젊은이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소련 전역에서 다섯 명의 여성이 그를 그리워하다 자살했으며, 수많은 이들이 빅토르 최의 시신이 안치된 시립병원에 몰려들었습니다. 병원은 곧 빅토르 최의 추모 인파와 팬들이 던진 장미꽃으로 뒤덮였고, 그의 죽음에 흥분한 팬들의 성화로 장례식이 며칠씩 연기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소련 곳곳에는 빅토르 최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카잔, 키예프, 알마아타, 타슈겐트 등에 빅토르 최 거리가 들어섰고,

이곳 모스크바의 문화예술의 장소인 아르바트 거리에도 '빅토르 최 추모의 벽'이 생겼습니다.

 

유튜브 빅토르 최 관련 영상들 입니다.

빅토르최 КИНО - Перемен Peremen

https://www.youtube.com/watch?v=_i5zbzYMkhc

 

빅토르최 KINO - Voina (Live)

https://www.youtube.com/watch?v=Q2XvcniqoZg

 

빅토르 최 올림픽경기장 공연

https://www.youtube.com/watch?v=YAixwxt0dVs

 

 

 

 

 

푸쉬킨이 결혼 후 몇 달간 신혼을 보냈던 집,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내부 구경을 위해서는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합니다.

 

 푸쉬킨은 소설 대위의 딸,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등의 시를 남긴

천재적인 작가이면서 아내에 대한 사랑 때문에 무모한 결투로 짧은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푸쉬킨은 매력적인 미모의 나타시아 곤차로바와 사랑에 빠져 청혼하였으나 나타시아 집안의 반대로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집을 마련하고 정착했는데 이 시기에 ‘대위의 딸’과 ‘스페이드 여왕’을 집필하였다고 합니다.

  

 결혼은 아름답고 순수한 것 같았으나 둘 사이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고, 특히 나탈리아는 지적, 시적인 관심이 없었으며, 자신의 미모를 뽐내기를 좋아했던 나탈리아는 황제 표트르와 불륜관계라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고, 러시아 사교계에서 염문을 뿌리고 다니며, 허영에 빠져 푸쉬킨의 명예와 자존심을 무너뜨렸는데, 러시아의 기병대에 근무하던 프랑스 장교 단테스와 염문이 사교계에 일파만파로 퍼지게 되었고, 이에 분개한 푸쉬킨은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여 1837년 1월 27일 푸쉬킨과 단테스는 나탈리아를 두고 결투를 하게 됩니다. 근위대 장교인 단테스와의 결투는 당연히 푸쉬킨이 불리한 결투였음에도 자신의 자존심과 사랑을 걸고 한 것이었는데, 이 결투에서 푸쉬킨은 결국 복부에 입은 총상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37세였는데, 그가 유언처럼 남긴 시가 바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입니다. 푸쉬킨은 시대의 아픔과 국민의 상처를 아파하면서도, 사랑을 위하여서는 모든 것을 건 비운의 삶을 살다간 천재작가였습니다.

 

푸쉬킨과 그의 아내 나탈리아 동상

푸쉬킨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9년에 세워진 동상으로 부부의 동상이 손을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손 사이에 간격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사랑의 아픔을 동상에 표현 듯합니다.  푸쉬킨이 죽어 가면서 유언처럼 남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 그가 얼마나 상심하며 떠나가는 여인에 대한 사랑을 기원했는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아르바트 거리 풍경

 

 

 

 

 

 

 

가이드가 무료로 화장실은 공립학교, 유료 화장실은 사립학교로 부르겠다고 사전교육이 있었는데, 맥도날드는 공립학교입니다...^^

 

크레믈린 궁으로 가면서 버스에서 본 모스크바 거리 풍경입니다.

 

 

우주센터인 듯합니다.

 

레닌 동상

 

 

 

 

 

크레믈린 궁에 도착하였습니다.

 

 

Posted by 군자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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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빅토르 최의 인기가 대단했군요!

    2014.11.18 22: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photo131

      28세 젊은 나이에 의문의교통사고 사망... 안타까웠습니다...ㅠㅠ

      2014.11.19 09:21 [ ADDR : EDIT/ DEL ]

모스크바의 심장 붉은광장

붉은 광장은 15세기말경 크렘린 성벽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져 러시아와 소련의 정치사, 사회사의 구심점이 되어왔는데, 면적은 약 7만 3,000㎡에 이르며 크렘린의 정동쪽, 모스크바 강의 북쪽에 위치합니다. 광장의 북쪽 끝에는 국립역사박물관, 남쪽 끝에는 성 바실리 대성당, 동쪽에는 국영백화점인 GUM 백화점이 있으며, 서쪽에는 1930년 완공된 레닌묘가 있습니다.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부활의문을 들어서면서 보이는 붉은 광장,  정면에 성 바실리 성당, 왼쪽에 굼 백화점, 오른쪽에 레닌묘와 크레믈린 궁이 위치합니다.

 

 

성 바실리 성당과 스파스까야 시계탑, 그리고 크레믈린 성벽

 

 

 

파라미드 모양의 레닌묘와 둥근 지붕의 대통령 집무실

 

붉은광장 북쪽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입니다. 오른쪽으로 방금 들어온 입구인 부활의 문이 보입니다.

 

 

 

미닌과 포자르스키 동상

인민 의용군을 조직하여 1612년 폴란드군에게 승리함으로써 모스크바를 해방시킨 영웅적 행동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청동상으로 원래는 광장 중앙에 있었는데, 열병 및 시위를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해 바실리 성당 앞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성 바실리 성당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남쪽에 있는 높이가 46미터인 중앙탑과 그것을 둘러싼 8기의 탑으로 이루어져 있는 매우 독특한 양파모양 지붕의 바실리 성당은 1560년에 완성되어 성모 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모셨으며, 정식 이름은 포크로프스키 성당인데, 1588년에 증축한 부제실에 당시 열렬한 숭배를 받고 있던 성 바실리를 모셨기 때문에 나중에는 바실리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반 4세는 완공된 성당이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이 성당을 지은 장인이 다시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성당을 짓지 못하도록 두 눈을 멀게 하였다고 합니다.

 

 

 

 

 

 

 

 

 

 

 

 

 

 

 

 

스파스까야 탑

이 시계탑의 꼭대기의 별은 시간에 따라 회전을 하는데, 이 탑의 시계가 모스크바의 표준 시 이기 때문에 해마다 12월 31일 우리나라 보신각처럼 이 시계탑의 종소리를 듣기위해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든다고 합니다.

 

 

 

 

 

러시아 깃발이 보이는 곳이 크레믈린궁의 대통령 집무실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있을 때만 깃발을 올리는데 경호 문제로 항상 깃발이 올라가 있으며,

퇴근할 때는 똑같은 모양의 차량 4대가 궁을 빠져나와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향하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어느 차량에 탑승 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레닌의 묘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의 유해가 커다란 유리관 속에 방부처리 되어 생전 모습으로 안치되어 있는데 소련이 해체한 직후 레닌을 땅에 묻자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다수석을 차지한 공산당의 반대로 결렬되었다고 합니다. 레닌 묘의 바로 뒤에는 역대 소련공산당 서기장들인 스탈린,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등의 묘가 있다고 합니다.

 

 

 

광장 동쪽에 위치한 국영백화점인 GUM 백화점

서방세계에 공산주의 종주국인 러시아에도 훌륭한 백화점이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 건립 되었다는데 상품이 비싸기로도 유명합니다.

 

 

 

 

 

붉은 광장을 둘러보고 버스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모스크바에도 8월 초 무더위가 기승이었는데 살수차가 뿜어내는 물줄기에 무지개가 보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본 굼 백화점과 성 바실리 성당

 

다음 포스팅은 푸쉬킨과 빅토르최의 추모벽이 있는 아르바트거리 입니다.

 

Posted by 군자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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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놀이동산에서 자주보던 건물같아요..ㅎㅎㅎ
    웅장하면서도 신기하네요.

    2014.11.17 23: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성바실리 성당은 언제 봐도 신기한 거 같아요.
    저는 저 성바실리 성당과 붉은 광장을 보기 위해서 러시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ㅎㅎ

    2014.11.17 23: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제2차 세계대전의 군인 전사자와 민간 희생자는 모두 5천 200만 명에 이르는데 그 중 러시아의 군인과 민간인 희생자가 무려 2천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체 희생자의 40%에 해당하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독일군에 승리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의 입지를 한층 더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무명용사의 묘 경비병 교대 행진

 

부활의 문 (바스크레센스키 문)

 

붉은 광장으로 들어가는 부활의 문은 17세기에 세워졌지만 퍼레이드에 방해된다고 생각한 스탈린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구소련 붕괴 후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부활의 문 앞에 하늘색 지붕의 작은 성당은 기적을 나타낸다는 성모님의 이콘이 있어서 유명한 성당이라고 합니다.

 

 

정면의 건물은 국립역사박물관으로 4백만점에 가까운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2차 대전에서 나치군을 격퇴하고 모스크바를 방어한 러시아 영웅  게오르기 주코프장군의 동상

제식용 말은 어려서부터 앞발에 부목을 대고 걷는 훈련을 시켜 보는 것처럼 앞다리를 쭉 뻗어 걷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동상을 자세히 보면 말의 오른발이 나치의 깃발을 밟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멀리 붉은광장 중앙으로 사각형 구멍들이 있는 레닌 묘와  왼쪽으로 성 바실리성당 일부가 보입니다.

 

 

1941-1945는 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와 독일이 전쟁을 치렀던 기간인데 나치 히틀러의 침공에 의해 수천만 명의 병사와 민간인들이 희생된 것을 기억하자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름 모를 그대여! 그대의 숭고한 정신은 영원하리라!”

 

 

영원의 불꽃'

철모가 놓여있는 무명용사의 묘 앞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년 내내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경비병들과 경비병들에게 접근하는 사람을 감시하는 또다른 경비병 입니다.

 

경비병 교대식 입니다.

 

 

 

 

 

 

 

 

 

90도 이상 올라가는 발입니다.

 

 

 

 

 

 

 

경비병이 꼼짝 않고 있어서 마치 마네킹 같은 모습인데 경비병은 슬라브족 출신 중에서 가장 잘생긴 병사로 선발한다고 합니다.

 

모스크바 무명용사의 묘 경비병 교대식을 갤럭시 노트2로 촬영한 동영상입니다.

 

 

 

 

 

 

다음 포스팅은 붉은광장과   성 바실리 성당입니다.

 

Posted by 군자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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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네바강의 강폭이 가장 넓어지는 하구의 삼각주 지대에 있는 토끼섬에 축조한 요새로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 군으로부터 러시아를 지키기 위하여 건설하였고, 상트페테르부르크 탄생의 계기가 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1733년에는 요새의 중앙에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페트로)와 바울(파울로)을 기념하는 목조교회가 세워졌는데, 여기서 페트로파블로프스카야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하며, 성당의 후면에는 표트르 대제 이후의 역대 황제와 황후들이 묻혀 있다고 합니다.

 

 

 

 

이 요새가 역사상 전쟁에 사용된 적은 없으며, 대신 1917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정치범 수용소로 활용됐는데, 작가 고리끼와 도스토에프스키, 혁명가 트로츠끼와 레닌의 친형도 이곳에 수감되었으며, 1920년대 들어 소비에트 정부의 '역사박물관'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나무위로 로스트랄 등대가 보입니다.

로스트랄은 라틴어로 '뱃머리’를 뜻하는데,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해전에서의 승리를 기념하여 원주를 세우고 포획한 배의 뱃머리로 기둥을 장식하였는데, 러시아도 이를 본떠서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 합니다. 기둥에 부착된 4개의 형상은 러시아의 4대강인 볼가강, 네바강, 안가라강, 예니세이강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카잔성당은 피터폴성당, 이삭성당과 함께 페테르부르크의 3대 성당에 속하는 곳으로,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을 본 떠 1801년부터 약 10여 년간에 걸쳐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많은 성상화가 있는데 그 중 특별히, 눈여겨봐야 하는 성상이 있는데, 바로 ‘카잔의 성모마리아’입니다. 이 성화는 많은 전쟁에서 러시아에게 여러 차례의 승전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대중들에 의해 ‘기적의 힘’이 깃들어져 있다고 믿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2차 대전 때에,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스탈린조차도 승리를 기원하는 미사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카잔성당 내부에는 앉는 의자가 없고 3줄로 서서 미사를 보는데 왼쪽 줄은 죽은 사람을 위해, 오른쪽 줄은 산사람을 위해, 가운데 줄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줄이라고 합니다.

 

 

 

 

 

성당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인것을 모르고 촬영하였는데, 나중에 할머니 한분이 손짓으로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알려 주어서 알았습니다...^^

 

카잔성당 앞에서 본 넵스키대로 쪽입니다.

 

 

특이한 건물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큰 북카페겸 서점

푸쉬킨이 자주 들리는 곳이었는데 그의 연적과 결투를 하러 갔다가 총상을 입고 사망하여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석고대리석으로 건축된 코린트양식의 열주들, 세월이 지나면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이 단점이라고 합니다.

 

이제 공항으로 이동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발 모스크바로 향합니다.   다음 포스팅은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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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아르 작품 오페라 '여배우 잔나 사마리아의 초상화' 18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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