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공화국의 수도인 베오그라드는 세르비아 중북부 지방 도나우 강과 사바 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합니다. 7천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베오그라드는 전략적 요충지인 칼레메그단 요새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는데, 1440년 이후 오스트리아인들이 3차례 정복한 것을 제외하고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며, 활발한 상업 중심지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나토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가림판의 세르비아의 미녀 하사관, 모병제인 세르비아 군사령부에서 청년들의 지원입대를 홍보하는 광고라고 합니다.

 

1999년 코소보 사태 때 나토(NATO)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채 방치 된 세르비아 정부 건물

 

칼레메그단(Kelemegdan) 요새 안내도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도움을 받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시에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세운 기념비가 보이는 프랑스풍의 정원입니다.

 

“A LA FRANCE” 세르비아의 전쟁고아들을 보살펴주는 프랑스 여인을 나타낸 부조

 

 

칼레메그단(Kelemegdan)은 터키어로 요새(Kale)와 전쟁터(Megdan)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이라고 합니다.

 

 

공룡 전시회를 준비 중인 듯합니다.

 

 

처음 칼레메그단 요새를 건설한 사람들은 켈트족으로,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3세기경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이민족의 침입으로 이 지역의 주인이 자주 바뀌면서 무려 40여 차례나 증축되었다고 합니다.

 

 

야외 군사박물관(Military museum)

 

 

 

 

 

 

 

 

얼핏 독서를 하는 줄 알고 참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네요.^^

 

 

왼쪽이 사바(Sava), 오른쪽이 도나우(Danube)강입니다. 두 강이 만나는 지점 언덕 위 천혜의 요지에 칼레메그단 요새를 만들었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파손된 칼레메그단 요새가 다시 복구되어 베오그라드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베오그라드는 흰색도시 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성벽을 쌓을 때 하얀 돌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르비아 국립은행(NATIONAL BANK OF SERBIA)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사르보나 정교회

세르비아가 이슬람국가였던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 1837년 착공 1845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사르보나 정교회 맞은편에 있는 물음표 “?”카페

처음에 사르보나 교회 앞 카페란 상호를 사용 하였는데, 교회 측의 항의로 사용할 수 없어 “?”로 했더니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베오그라드의 명동크네자 미하일로(Kneza Mihaila) 거리

 

 

 

 

 

 

 

 

 

 

 

세르비아를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해방시킨 세르비아의 영웅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 왕의 동상

 

공화국 광장(Trg Republike), 베오그라드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만남의 장소로도 많이 이용하는 곳입니다.

 

 

베오그라드 스카다리야(Skadarlija) 거리, 19세기 중반부터 이곳에 술집과 음식점 등이 들어서면서 보헤미안들의 주 무대가 되었고, 이후 예술인들의 거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하는데, 꽃들이 건물의 벽과 노천카페를 장식하고 있어서 여성 일행들이 감탄한 거리였습니다.

 

1999년 코소보 사태 때 나토(NATO)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채 방치 된 세르비아 국방성 건물

 

코소보사태

1998년 초, 세르비아군과 유고슬라비아군은 게릴라 부대로 이루어진 코소보 독립군을 제압하기 위해 시작된 코소보사태는 19991월에 이르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수백만이 터전을 잃게 된다. 이에 NATO가 유고슬라비아에 공습을 감행, 1999610, 유고슬라비아가 코소보 전선에서 물러날 뜻을 전달하면서 77일에 걸친 공습이 중단되고, 코소보 사태가 종결된다. 하지만 19995월 말을 기점으로, 150만에 달하는 코소보 주민들이 터전을 잃었으며 세르비아에 의한 인종청소 성격으로 발전한 코소보 사태로 최소 10만 명 이상의 알바니아계 남자들이 실종되었는데, 실종자 수는 최고 50만 명까지 추정된다고 합니다.

 

코소보는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코소보공화국을 세웠으나, 아직도 세르비아는 코소보 독립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코소보 사태로 나토의 공습을 받은 지 15년이 지난 베오그라드는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시민들의 일상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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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여행 8일차(68)

아침 일찍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의 수도 사라예보(Sarajevo)를 출발하여 세르비아(Serbia)의 수도 베오그라드(Beograd)로 이동하는 동안에 달리는 버스에서 본 풍경들입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까지는 휴게소 포함 총 7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사라예보를 출발한지 두 시간 쯤, 휴게소에서 본 체리나무입니다.

 

사과나무

 

 

 

 

 

 

 

둥근 지붕으로 보아 러시아와 동유럽 등지에서 많이 보이는 정교회 건물인 듯합니다.

 

 

 

사라예보를 출발한지 3시간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국경에 도착하여, 버스에 승차한 채로 여권만 걷어서 세르비아 입국 수속을 하였습니다. 인원 파악을 겸하여 여권을 돌려 주기위해 제복 차림의 국경 검문소 여직원이 버스에 올랐는데, 일행 중 한명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촬영 포즈를 취하자 미모의 세르비아 국경 검문소 직원이 단호하게 손을 내저어 일행을 긴장 시키더니 이내 웃는 표정으로 윙크하고는 버스를 내려갔습니다.

 

 

 

베오그라드(Beograd) 170km

 

 

 

동유럽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국민소득이 낮은 편인데도 땅이 넓어서인지 우리나라에서 보다 트랙터가 많이 보입니다.

 

꿀벌 통 들인데, 양봉업이 잘 되는지 벤츠를 타고 다니나 봅니다.^^

 

 

 

 

예전에 동유럽 여행 중 황새 둥지를 보고 신기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되어 복원사업을 하고 있는 황새가 동유럽에서는 흔하게 보입니다.

 

 

 

 

베오그라드에서 도나우강과 만나는 사바강인 듯합니다.

 

옥수수 밭입니다.

 

사라예보를 출발한지 7시간, 베오그라드 시내입니다.

 

 

 

 

 

 

 

베오그라드 시내

 

 

 

 

 

 

 

 

멀리 위쪽이 연결되고 135m 높이에 회전 레스토랑이 있는 베오그라드에서 두 번째로 높은 웨스턴 시티 게이트(western city gate)가 보입니다.

 

나토의 공습으로 파괴되었다는 건물이 방치되어 있습니다.

 

 

 

세르비아를 오스만 터키 제국의 지배에서 해방시켰다는 세르비아인들의 영웅 크네즈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 왕의 동상

 

다음 포스팅은 세르비아의 수도이며 7천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베오그라드 시내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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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6.12.29 13:34 [ ADDR : EDIT/ DEL : REPLY ]

발칸여행 7일차(67)

유럽에서 가장 동양적인 도시이자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의 라틴다리, 바슈카르지아, 대성당, 모스크 등을 둘러본 일정입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 Herzegovina)의 수도 사라예보(Sarajevo)는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도시, 1973년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이에리사, 정현숙 선수의 금메달 승전보 등이 생각나는 도시로, 15세기말 오스만 투르크에게 점령당한 후 교역의 중심지와 이슬람 문화의 거점으로 발달하여 시민의 절반이 이슬람교도이며, 모스크와 옛 투르크인들의 시장 등이 관광지입니다.

 

1914628일 발생한 사라예보 사건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 청년이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를 암살하여,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이를 수락하지 않을 경우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위협 하였는데 결국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진 사건이었습니다.

 

20여 년 전 내전 때 파괴 된 건물이 아직도 사라예보 시내에 그대로 방치 되어 있습니다.

발칸 지역 중심에 위치하여 유럽의 화약고로 불렸던 사라예보는 25년 전인 1991년 세르비아군과 민병대에 의해 포위되어 포격과 함께 높은 언덕 지대에 포진한 저격수(sniper, 스나이퍼)들이 도심에 보이는 시민을 저격하여 지하 땅굴을 이용하거나 밤에만 겨우 외출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터키의 지배를 받았던 사라예보는 시민의 절반가량이 무슬림이라고 합니다.

 

현재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건물 벽에 포탄 맞은 자국들이 보입니다.

아파트 중앙에는 포탄 자국이 없는 것을 보면 아파트 옆으로 쏘았는데 명중률이 낮은 박격포라서 포탄이 아파트에 맞은 듯합니다.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에 포위된 사라예보 시민들은 시내에서 UN이 관리하고 있었던 공항까지 4개월 이 넘는 시간이 걸려서 800여 미터의 터널을 뚫어서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20여 년 전 내전 때 파괴 된 건물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사라예보는 내전으로 묘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1984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올림픽 스타디움을 공동묘지로 사용하고 있으며, 거리 곳곳에 20여 년 전의 전쟁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었습니다.

 

미술대학인 예술 아카데미(Academy art) , 밀야츠카(Miljacka) 강에 학생들이 디자인 했다는 현대적 감각의 다리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란 뜻이라고 합니다.

 

버스에서 본 라틴다리,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저격을 받은 장소입니다.

인터넷을 뒤져도 답을 얻을 수 없었는데, 바닥에 검은 돌로 장식한 무늬는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저격을 받아 사망한 자리라는 뜻으로 설치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제 버스에서 내려서 사라예보에서 살고 있다는 한국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도보 투어를 합니다.

 

강이라기보다는 청계천 같은 밀야츠카(Miljacka)

 

사라예보 구 시청사에서 1949년 국립 및 대학 도서관으로 되었는데 19928월 내전 당시 포격을 받아 파괴되고 150만권이 넘는 장서가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다가 지원금으로 시설 복구가 이루어져서 사라예보 시청의 홀과 국립 대학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난 건물입니다.

 

100여 년 전 시청사를 짓기 위해서 집터를 양보해 달라고 할 때 집주인 요구대로 원형을 유지하여 옮겨준 집, 현재는 레스토랑입니다.

 

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 장소 라틴다리(Latinska ćuprija)

1798년 세워진 라틴 다리는 보스니아를 강제로 합병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사라예보를 방문하여 오픈카를 타고 다리 옆을 지나던 도중 19세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였던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쏜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세계 대전이 시작 됩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황태자 부부가 오픈카를 타고 지나다가 저격을 당한 곳이라고 합니다.

 

 

 

사라예보 박물관 (Muzej Sarajevo)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저격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숨어 있다가 뛰어 나왔던 카페로 당시의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입니다.

 

1914황태자를 저격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와 자료사진

 

이곳에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위 계승자 페르디난트와 그의 부인 소피아를 암살하다.

 

맨 아래 사진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의 장례식 장면입니다.

 

 

 

 

 

예수 성심 대성당(Katedrala Srca Isusova)

 

 

사라예보에서 가장 큰 가톨릭 성당이라는 예수 성심 대성당,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결합된 외관과 네오 비잔틴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내부가 인상적이라고 하는데 내부 사진은 촬영하지 못했습니다.

 

사라예보 장미(Sarajevo Roses)

내전 때 포탄이 떨어져 파인 곳에 붉은색을 칠한 사라예보 장미, 전쟁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자는 메시지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Papa Giovanni Paolo II, 재위: 1978~2005)

 

 

 

 

우리나라 장기처럼 대형 체스를 즐기는 사라예보 노인들입니다.

 

 

 

 

 

가지-후스레브 베이 모스크(Gazi Husrev-begova džamija) 1531년 건축된 것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는 가장 중요한 이슬람 건축물로 중 하나인데 모스크의 이름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절 이 지역의 통치자 가지-후스레브 베이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모스크 뜰 안까지는 들어갈 수 있지만 모스크 안은 무슬림만 입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칸막이로 남녀 자리가 구별 되어 있는 모스크 입니다.

 

 

예전의 터키식 여관인 한(HAN), 정문을 들어가서 가파른 계단의 2층으로 올라가면 자 모양으로 객실이 배치되어 있는데 주 이용객이었던 상인들의 안전을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사라예보 구시가지의 메인 광장 바슈카르지아(Baščaršija)

중앙 시장이라는 뜻의 터키어인 바슈카르지아는 19세기경까지는 지금보다 두 배 정도 더 큰 규모의 시장이었으나 화재가 발생하여 대부분의 건물이 타버린 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바슈카르지아(Baščaršija) 광장 중앙에 있는 세빌리 샘

 

 

보이는 뒷산에서 내전 당시 사라예보를 포위한 세르비아 저격수들이 지나는 사람들을 조준 사격하여 낮에는 밖에 나다닐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라예보를 떠나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향하는 길, 주택 단지 뒤로(흰 원) 내전 때 희생 된 무슬림들의 공동묘지가 보입니다.

 

다음 포스팅은 7천년 역사를 가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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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레트바 강을 끼고 있는 모스타르(Mostar)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수도인 사라예보 다음으로 잘 알려진 유명 관광지입니다.

모스타르의 상징과 같은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인데, 오스만 투르크가 이 지역을 점령한 뒤 9년여의 건축 기간을 거쳐 1566년 완공한 다리로 당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단일 구간 아치 다리였다고 합니다.

 

 

모스타르에 도착 스타리 모스트로 가는 길에 보이는 아파트, 내전이 끝난 지 20여년이 흘렀는데도 총탄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내전으로 파괴된 채 아직 복구되지 않은 건물도 보입니다.

 

 

 

점심 식사하기엔 이른 시간이라서 먼저 모스타르의 상징 스타리 모스트 다리를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1991년 시작 된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 19931191015분 크로아티아군의 포격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내전이 끝난 이후 유네스코와 세계은행을 포함한 국제단체들이 협력해 3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04년 복구되었고, 다음 해인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포격으로 파괴된 다리 파편들을 헝가리 잠수부들이 건져 올려 터키의 건축가들이 1088개의 돌을 재배치하여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 재편 과정에서 일어난 세르비아계와 타민족 간에 벌어진 싸움으로 1991627일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막기 위해 슬로베니아를 침공함으로써 시작되어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등지에서 내전이 발생하였는데 내전은 다른 민족에 대한 인종 청소 양상으로 발전하여 보스니아에서만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석재만을 이용해서 만든 폭 4m, 길이 30m의 한 개 아치로 된 스타리 모스트는 당시 오스만 투르크의 뛰어난 석조 건축 기술을 보여줍니다.

 

스타리 모스트 위에서 본 풍경

 

다리 바닥에 미끄지지 않도록 돌로 된 턱이 있는데, 잘못하면 걸려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무슬림 지역입니다.

 

 

 

멀리 산 위에 보이는 십자가는 내전 때 희생 된 가톨릭계 크로아티아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을 중심으로 가톨릭 마을과 무슬림 마을로 나뉘는데,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세르비아인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내전 이후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지금은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다리 양쪽 지역을 각각 차지하고 무슬림 지역과 가톨릭 지역을 형성하고 있어서 기념품 상가 분위기도 현저하게 달랐습니다.

 

 

잊지 말자, 1993

다리 건너에 살던 어제의 친구가 적이 된 내전을 잊지 말자는 표지석입니다.

 

 

 

점심식사를 하였던 식당입니다.

 

 

 

 

 

점심 식사 후 다시 무슬림 마을 쪽을 자세히 둘러보기 위해서 스타리 모스트로 가는 중입니다.

 

석재로만 건축된 다리 바닥이 반질반질 합니다,

 

 

 

청년 들이 다리위에서 다이빙 하겠다고 뛰어 내릴 듯 포즈를 취하며 관광객들에게 돈을 요구하였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뛰어내리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다이빙할 모습이지만 뛰어내리지 않았습니다. 스타리 모스트에서는 매년 7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다이빙 대회가 벌어지는데, 강의 유속이 빠르고 수온이 낮아서 숙련된 다이버가 아니면 쉽게 다이빙 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강을 사이에 두고 무슬림과 가톨릭 지역으로 나뉘어 있지만 보스니아 내전 이전까지는 평화롭게 공존했었다고 합니다.

 

 

 

 

 

 

물담배 파이프 시샤도 보입니다.

 

 

 

이슬람 사원의 미나레가 보입니다.

 

포탄 탄피에 무늬를 조각한 모습을 보니 옛날 포병장교 근무시절 105mm 포탄 탄피를 우산꽂이로 사용하던 생각이 납니다.

 

 

 

보스니아는 문화와 종교가 혼재하고 있는 지역으로, 로마의 지배와 기독교의 보급, 서로마 동로마 교회의 분열에 따른 가톨릭과 정교회, 오스만 터키 제국에 의한 이슬람교 등이 여러 차례의 민족 갈등과 분쟁을 일으킨 배경이 되었습니다.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기 불편할 것 같은 자갈 바닥입니다.

 

 

단순히 탄피에 문양만 새긴 줄 알았는데, 사진으로 보니 총알로 만든 볼펜입니다.

 

내전의 격전지답게 기념품 판매대에 로켓 포탄도 보입니다.

 

내전이 끝난 지 20여년이 흘렀는데도 상처는 남아있습니다.

 

모스타르를 출발 사라예보로 가는 길에 보이는 공동묘지인데, 묘비에 적힌 사망일이 대부분 내전이 일어난 1993년이라고 합니다.

종교로 인해 평화를 얻어야 하는데 종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여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비극의 현장,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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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Bosnia And Herzegovina) 메주고리예(Medugorje)는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시골마을이었으나 1981624일 이곳 담배 농장에서 일하던 6명의 아이들이 크리니카산 기슭에서 성모 마리아 발현을 목격한 이후로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성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넓은 메주고리예 성 야고보 성당 비포장 주차장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성당과 반대쪽에 보이는 십자가 산

 

주차장에서 보이는 성 야고보 성당

 

 

 

메주고리예 안내도

 

성모 발현 언덕(apprition hill)1.5Km 거리에 있는데 길도 험하고, 이번 여행이 성지순례가 아니어서 생략하고 치유의 예수상과 십자가 산이 보이는 곳, 그리고 성 야고보 성당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치유의 예수상으로 가는 길 우측에 보이는, 예수님이 경험한 빛의 신비(Luminous mysteries of the rosary)를 나타낸 모자이크 기법의 성화입니다.

 

1.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심

 

2. 가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심

 

3.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

 

4. 거룩하게 변모하심

 

5. 성체 성사를 세우심

 

 

청동으로 만들어진 치유의 예수님 상

무릎 근처에서 성수가 흘러나오는데, 아픈 곳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성수를 묻히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입니다.

 

 

 

치유의 예수 상 무릎 근처에 이슬처럼 맺히는 물방울

 

성당 앞에 성물(聖物) 판매점에서 성수를 묻힐 수 있는 예쁘고 작은 흰 거즈를 묶음으로 판매 하고 있어 성수를 묻혀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치유의 예수님 상둘레에 조성 된 십자가의 길입니다.

 

 

 

윗줄에 십자가 언덕, 옛교회, 현재 교회, 하늘에서 본 교회, 성모님 발현 언덕 사진입니다.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을 목격한 여섯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성모님 발현을 목격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본당의 신자들, 주변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당시 공산정부였던 유고슬라비아는 종교적인 것이 부각되는 것을 꺼려서 발현 증인인 아이들과 부모, 신자들을 정신과 감정, 경찰 조사까지 하면서 박해하였고, 본당 신부는 체포되어 3년 반의 형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른쪽에 성물을 파는 기념품점, 앞쪽에 공동묘지가 보입니다.

 

공동묘지 뒤쪽으로 십자가 산(cross mountain)이 보입니다.

 

 

 

성 야고보 성당(St. James Church)과 야외 제단(open air altar)

  

 

야외 제단(open air altar)

성모님 발현 소문이 퍼져나간 후 예상외의 엄청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해 성 야고보 성당 외부 바깥쪽으로 추가 설립 된 약 5천명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는 야외 제단으로, 하절기 축일과 축제 때에는 이곳마저도 공간이 부족할 만큼 엄청난 수의 신자들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한글도 보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메주고리예 본당은 1892년에 건립되었으나 지반이 약해 가라앉는 등의 피해를 입어 현재의 주 성당인 성 야고보 성당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새로 짓기 시작하여 1969119일 축성 되었는데, 1981년 성모님 발현 이후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찾는 순례성지가 되었습니다.

 

 

17명의 신부님들이 합동 미사 중입니다.

 

 

 

 

고해소 규모도 엄청난 성 야고보 성당(St. James Church)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님도 메주고리예를 방문하셨다고 합니다.

 

다음 포스팅은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이 남아 있는 모스타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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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여행 7일차(2016년 6월 7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메주고리예(Medugorje)는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시골이었으나 1981624일 이곳의 크리니카산에서 6명의 아이들이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는 성모 발현 기적 이후로,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성지이자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치유의 예수님 상

무릎 근처에서 성수가 흘러나오는데, 아픈 곳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물을 묻히기 위해 거즈 등을 들고 줄을 서 있는 모습입니다. “치유의 예수님 상둘레로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十字架~, via crucis, way of the cross)

가톨릭 신심행사중에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것 중 하나.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성화(聖畵)로 혹 조각으로 표현하여 축성된 십자가와 함께 성당 양벽에 걸어둔 곳(14, stations)을 하나하나 지나가면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이것은 초기 교회시대에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실제로 빌라도 관저에서 갈바리아 산까지의 거리를 걸으면서 기도드렸던 데서 유래한다. 이 순례지가 지리적 정치적인 장애를 받게 되자 15세기, 16세기에 유럽에서는 성지 모형의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출처:[가톨릭 대사전]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제1: 예수, 사형선고 받으심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2: 예수, 십자가 지심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3: 예수, 기진하시어 넘어지심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4: 예수와 성모님 서로 만나심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5: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 짐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6: 성녀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 닦아 드림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7: 기력이 쇠하신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심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8: 예수,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9: 예수, 세 번째 넘어지심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10: 예수, 옷 벗김을 당하심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11: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히심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12: 예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13: 제자들이 예수의 성시(聖屍)를 내림

 

 

메주고리예 성지 십자가의 길, 14: 예수, 무덤에 묻히심

Posted by 군자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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