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공화국의 수도인 베오그라드는 세르비아 중북부 지방 도나우 강과 사바 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합니다. 7천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베오그라드는 전략적 요충지인 칼레메그단 요새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는데, 1440년 이후 오스트리아인들이 3차례 정복한 것을 제외하고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며, 활발한 상업 중심지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나토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가림판의 세르비아의 미녀 하사관, 모병제인 세르비아 군사령부에서 청년들의 지원입대를 홍보하는 광고라고 합니다.
1999년 코소보 사태 때 나토(NATO)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채 방치 된 세르비아 정부 건물
칼레메그단(Kelemegdan) 요새 안내도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도움을 받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시에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세운 기념비가 보이는 프랑스풍의 정원입니다.
“A LA FRANCE” 세르비아의 전쟁고아들을 보살펴주는 프랑스 여인을 나타낸 부조
칼레메그단(Kelemegdan)은 터키어로 요새(Kale)와 전쟁터(Megdan)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이라고 합니다.
공룡 전시회를 준비 중인 듯합니다.
처음 칼레메그단 요새를 건설한 사람들은 켈트족으로,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3세기경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이민족의 침입으로 이 지역의 주인이 자주 바뀌면서 무려 40여 차례나 증축되었다고 합니다.
야외 군사박물관(Military museum)
얼핏 독서를 하는 줄 알고 참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네요.^^
왼쪽이 사바(Sava)강, 오른쪽이 도나우(Danube)강입니다. 두 강이 만나는 지점 언덕 위 천혜의 요지에 칼레메그단 요새를 만들었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파손된 칼레메그단 요새가 다시 복구되어 베오그라드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베오그라드는 흰색도시 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성벽을 쌓을 때 하얀 돌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르비아 국립은행(NATIONAL BANK OF SERBIA)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사르보나 정교회
세르비아가 이슬람국가였던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 1837년 착공 1845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사르보나 정교회 맞은편에 있는 물음표 “?”카페
처음에 “사르보나 교회 앞 카페”란 상호를 사용 하였는데, 교회 측의 항의로 사용할 수 없어 “?”로 했더니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베오그라드의 명동” 크네자 미하일로(Kneza Mihaila) 거리
세르비아를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해방시킨 세르비아의 영웅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 왕의 동상
공화국 광장(Trg Republike), 베오그라드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만남의 장소로도 많이 이용하는 곳입니다.
베오그라드 스카다리야(Skadarlija) 거리, 19세기 중반부터 이곳에 술집과 음식점 등이 들어서면서 보헤미안들의 주 무대가 되었고, 이후 예술인들의 거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하는데, 꽃들이 건물의 벽과 노천카페를 장식하고 있어서 여성 일행들이 감탄한 거리였습니다.
1999년 코소보 사태 때 나토(NATO)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채 방치 된 세르비아 국방성 건물
코소보사태
1998년 초, 세르비아군과 유고슬라비아군은 게릴라 부대로 이루어진 코소보 독립군을 제압하기 위해 시작된 코소보사태는 1999년 1월에 이르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수백만이 터전을 잃게 된다. 이에 NATO가 유고슬라비아에 공습을 감행, 1999년 6월 10일, 유고슬라비아가 코소보 전선에서 물러날 뜻을 전달하면서 77일에 걸친 공습이 중단되고, 코소보 사태가 종결된다. 하지만 1999년 5월 말을 기점으로, 150만에 달하는 코소보 주민들이 터전을 잃었으며 세르비아에 의한 인종청소 성격으로 발전한 코소보 사태로 최소 10만 명 이상의 알바니아계 남자들이 실종되었는데, 실종자 수는 최고 50만 명까지 추정된다고 합니다.
코소보는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코소보공화국을 세웠으나, 아직도 세르비아는 코소보 독립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코소보 사태로 나토의 공습을 받은 지 15년이 지난 베오그라드는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시민들의 일상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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