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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국 남프랑스 2018년6월/북이탈리아

비잔틴 모자이크의 걸작, 라벤나 성 비탈레 성당

by 군자삼락 2018. 7. 11.

천년 비잔틴 문화의 중심지 라벤나, 모자이크 사진이 많아서 2회로 나누어 포스팅합니다.

성 비탈레 성당, 왕관과 보석으로 치장한 테오도라 황후가 시녀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자이크

 

이탈리아 속의 산마리노 공화국을 출발, 1시간 반을 이동(86km)하여 라벤나에 도착하였다.

 

 

신곡(神曲)을 저술한 단테의 묘

 

25년 전 피렌체 여행 때, 단테 생가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이곳 라벤나에 단테의 묘를 만났다. 정치적 분쟁에 휘말려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망명 생활을 하던 단테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 라벤나에서 죽었다고 한다. 훗날 피렌체에서 단테를 기리기 위해서 무덤을 만들었지만, 라벤나는 단테를 추방한 피렌체에 단테의 시신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대문호 단테는 성 비탈레 성당(Basilica of San Vitale)과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Sant’Apollinare in Classe) 성당의 모자이크를 보고 라벤나를 지상낙원, 라벤나의 모자이크는 색채의 교향악이다.”라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탈리아 통일 영웅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동상

 

 

 

라벤나는 402년 서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으나 5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동고트족의 지배에 들어갔다가 540년경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권력을 잡으면서 다시 수도가 되었다.

 

라벤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시기에 건설된 산 비탈레(San Vitale) 성당, 라벤나가 동고트족 지배아래 있던 에클레시우스 주교 때 건축이 시작되어 548년 라벤나 27대 교구장 막시밀리아누스 주교 때 완성되었다.

 

유스티아누스 1세 시대의 건축양식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산 비탈레 성당은 비잔틴 예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천사를 대동한 예수께서 비탈레 성인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주시고, 에클레시우스 주교가 산 비탈레 모형을 바치려고 들고 있는 모습

 

 

두 기둥 왼쪽이 천사와 마태오 복음사가(福音史家), 오른쪽이 사자와 마르코 복음사가, 아래는 모세와 이사야

 

어린양을 제물로 바치는 아벨과 빵과 포도주로 아브람을 축복하는 하느님의 사제 멜키체덱

 

 

네 명의 천사와 하느님의 어린양

 

 

 

두 기둥 왼쪽이 독수리와 요한 복음사가, 오른쪽이 황소와 루가 복음사가, 아래는 에레미야와 모세

 

구약성경 속의 아브라함, 멜키체덱, 이사악 등의 이야기를 묘사한 모자이크

 

 

성반을 든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를 가운데로 왼쪽은 비잔틴왕국의 관리와 병사들, 오른쪽은 막시밀리아누스 주교와 부제들

 

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를 그린 한 쌍의 모자이크는 6세기 모자이크 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왕관과 보석으로 치장한 테오도라 황후가 포도주가 든 잔을 들고 시녀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자이크

 

 

 

 

 

 

 

이탈리아 Local guide의 계속되는 많은 설명에 인솔자가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포스팅은 묘당 안의 천장과 벽 전체가 호화찬란한 모자이크로 덮여 있는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Mausoleo di Galla Placidi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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