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는 1,500여 년 전인 서기 553년에 의신조사께서 창건한 역사 깊은 고찰이며, 쌍사자석등, 팔상전, 석연지 등 국보 3점과 보물 12점, 그리고 22점의 지방 문화재와 사찰로 향하는 길에 천연기념물 정이품송도 있는 호서지방 제일의 가람입니다.
호서제일가람
속리산 법주사 부도전
금강문
국보 제5호 쌍사자석등, 국보 제55호 팔상전, 국보 제64호 석연지 등 국보 3점이 모두 보입니다.
국보 제64호 석연지(石蓮池), Stone Lotus Fountain
높이 1.95m, 둘레 6.65m의 석연지는 신라 성덕왕 19년(720년)경에 조성된 희귀한 석조조형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괴임을 만들고 다시 복련을 두른 굄돌을 올렸으며, 그 위에 구름을 나타낸 동자석을 끼워 연지를 받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석조(石槽)
물을 저장하는 용기로 법주사가 번창하여 3천여 명의 승려가 모여 살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30㎝, 길이 446㎝, 너비 240㎝, 두께 21㎝의 대형 화강암 석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고 하며, 쌀 80가마를 채울 수 있는 부피인데 바닥에는 지름 11㎝의 구멍이 있어서 실제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물 제1413호 철확(鐵鑊)
신라 성덕왕 때 주조되었다고 전해오며 높이 1.2m, 직경 2.87m, 두께 10.8cm에 무게 20톤에 달하는 거대한 이 쇠솥은 신도 3만 명이 먹을 장국을 끓이던 솥이라고 하며,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이 솥을 이용하여 배식하였다고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국보 제55호 팔상전(捌相殿) - Palsang Pavilion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은 사찰 창건 당시에 지어졌다고 전하며, 신라 혜공왕 12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했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1602년부터 사명대사와 벽암대사에 의해 조선 인조 2년(1624)에 다시 복원된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국보 제5호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 Two Lions Lamp
쌍사자 석등은 신라시대 석등 중 걸작으로 신라 성덕왕 19년(72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인데, 하나의 돌에 조각 하였으며 다른 석등들에 비하여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보물 제916호 원통보전 (圓通寶殿)
법주사 창건 당시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서 776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중창하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24년 벽암대사(碧巖大師)가 중건 하였으며 2010년 전체를 해체하여 보수하였다고 합니다. 전각 내부에는 앉은키 2.8m, 허리둘레 1.9m의 거대한 목조의 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1호)이 자비가 넘치는 모습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보물 제1417호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
신라 33대 성덕왕 19년 (720년)경에 조성된 입상으로 향로를 머리에 이고 있으며, 향로 용기의 면에는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는데, 얼굴부분은 마모가 심하여 자세히 볼 수 없으나 잘록한 허리와 대조적으로 그릇받침을 받쳐든 힘겨운 듯한 양팔의 힘겨운 모습은 꽤 사실적입니다. 부처님께 향불을 공양하고 있는 희견보살의 모습을 조성해 놓은 높이 약 2m, 붉은 화강석 재료의 조각상
보물 제915호 대웅보전(大雄寶殿)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하였다고 합니다.
보물 제15호 사천왕석등(四天王石燈), Stone Lamp of the Four Heavenly Kings
높이 3.9m에 이르는 이 석등은 신라 성덕왕 19년(720년)경 제작되었으며, 우리나라 석등의 정형이라고 할 수 있는 8각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상대의 각 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어 사천왕석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보물 제 216호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로 사리각 옆 추래암(墜來岩) 높이 약 6m의 암벽에 볼록 새겨진 좌불상으로 둥글고 온화한 얼굴, 길고 큼직한 코, 둥근 눈썹 그리고 두툼한 입술 등은 고려 초기 마애불의 특징적 모습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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