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집트 2006년 1월/룩소르 카르낙 왕가계곡

이집트 여행- 모세를 구한 공주의 핫셉수트 장제전(葬祭殿)

by 군자삼락 2014. 6. 3.

핫셉수트(Hatshepsut) 장제전(葬祭殿)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여왕으로, 투트모스 1세의 딸인 여왕 핫셉수트는 남편 투트모스 2세가 죽은 후에 어린 투트모스 3세를 섭정했으며 후에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는데 이 장제전은 핫셉수트 여왕의 시아버지인 투트모스 1세와 자신의 부활을 기리며 건립된 것이라고 합니다.

 

 

 

왕가의 계곡 검문소 경계가 삼엄합니다.

이곳에서 1997년에 이슬람원리주의 과격파에 의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외국인 관광객 70여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차량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장제전 주차장

 

주차장에서 장제전까지는 코끼리열차를 이용합니다.

 

 

 

 

장제전 관광을 마치고 코끼리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3500 여년 전에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장제전입니다.

 

장제전 앞에서 주차장 쪽을 본 풍경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고 겨울에도 얼지 않는 따듯한 기후 때문에 풍화작용이 거의 없어 수 천 년 지난 유적들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합니다.

 

 

 

 

 

 

 

 

 

남편 투트모스 2세가 죽자 어린 투트모스 3세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파라오가 된 여왕 핫셉수트 두상

 

조각이나 벽화에서 보면 핫셉수트는 파라오 복장을 하고 턱수염이 있는데 여인은 파라오가 될 수 없다는 금기를 피하기 위하여 가짜 수염을 달고 남장을 했다고 합니다.

 

*** 모세를 구한 공주는 누구인가? ***

모세가 탄생한 때(BC1526년)는 투트모스 1세가 애굽을 통치 할 때였다.

투트모스 1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이 바로 모세를 강에서 건진 핫셉수트 공주였다.

공주의 아버지인 투트모스 1세는 정실부인을 통해서 4 자녀를 낳았는데 모두 죽고 핫셉수트 공주만 살아남아 이로 인해 그녀는 왕실에 남은 유일한 법적인 상속녀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였기 때문에 후처가 낳은 아들과 결혼하여 왕위를 잇게 되었다. 공주의 남편은 후에 투트모스 2세가 되었는데 그가 왕으로 있을 때에 모세의 나이는 12살~20살 정도였다. 모세는 핫셉수트 밑에서 애굽의 모든 학문과 문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투트모스 2세 역시 핫셉수트를 통해 아들 없이 딸 하나만을 낳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의 딸 역시 후처가 낳은 다른 아들과 결혼하여 왕권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후에 핫셉수트의 딸과 결혼하여 왕이 된 사람은 투트모스 3세라고 불렀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의 나이는 겨우 10살도 안된 나이였다. 그러므로 당시의 모든 권력은 핫셉수트 여왕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 모세의 탄생 ***  구약성경 탈출기 2(1~10)

레위 집안의 어떤 남자가 레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기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겨 길렀다. 그러나 더 숨겨 둘 수가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아기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기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공주가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고, 여종 하나를 보내어 그것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것을 열어 보니 아기가 울고 있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 아기는 히브리인들의 아이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였다. 그러자 아기의 누이가 나서서 파라오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공주님 대신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인 유모를 하나 불러다 드릴까요?” 파라오의 딸이 그래, 가거라.” 하자, 그 처녀가 가서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왔다. 파라오의 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아기를 데려다 나 대신 젖을 먹여 주게. 내가 직접 그대에게 삯을 주겠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아기를 데려다 젖을 먹였다. 아이가 자라자 그 여인은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갔다. 공주는 그 아이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 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

 

 

장제전에서 본 황량한 풍경

 

도굴되어 미이라와 부장품들이 약탈되고 버려진 석관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