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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2015년 7월/디로스, 스파르타

그리스여행- 영화 300의 무대 스파르타(Sparta)의 유적지

by 군자삼락 2015. 8. 22.

스파르타

스파르타(Sparta)는 기원전 9~8세기경에 도리아인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침입하여 원주민을 정복하고 세운 고대 도시국가로 귀족 정치를 실행 하였는데, 국민은 정복민의 자손인 시민, 정복당해 노예가 된 헬로트(Helot), 그리고 반자유인 계급인 페리오이코이(Perioikoi)라는 계급으로 구성되었으며 그중 시민만이 정치에 자유롭게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스파르타는 귀족정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법률에 따라 시민들을 교육하였고 그것이 소위 스파르타식 교육으로서 국가는 시민의 행동, 교육, 결혼 등에 일일이 간섭하여 시민을 국가에 절대적으로 복종시켰고 스파르타식 교육은 군국주의적이고 압제적이었지만 엄격한 훈련으로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게 된 스파르타는 기원전 5세기경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를 격파하고 그리스의 패권을 잡았으나 점차로 쇠퇴하여 기원전 146년에 로마에게 멸망하였습니다.

 

 

스파르타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어 도시를 방어할 성의 필요성이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처럼 성곽은 눈에 띄지않았고 거대한 올리브 농장에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그리고 원형극장 형태의 유적지 폐허만이 보였는데 올리브농장 보상에 필요한 예산이 부족하여 발굴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영화 300의 무대 스파르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100만 대군의 공격에 맞서 레오니다스(Leonidas)가 스파르타군 300명과 그리스 연합군 등 병사 4,900명으로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에피알테스라는 그리스인이 보상을 바라고 난공불락 천연 요새의 비밀 통로를 누설하자 일부 군사들을 다음 기회를 위해 철수시키고 친위대 300명과 함께 마지막 한사람까지 남아 싸우다 모두 전사한 모습을 그린 영화 300의 무대가 스파르타입니다.

 

 

올리브 열매

 

 

 

올리브나무 아래 나뒹굴고 있는 스파르타 유적

 

 

 

 

 

 

 

 

 

 

 

 

 

 

 

 

 

수백살은 되어 보이는 올리브나무

 

 

 

레오니다스(Leonidas)

백만 대군의 페르시아의 공격로인 테르모필레 협곡에 모인 연합군은 각각의 지휘관이 있었지만 총사령관은 레오니다스 왕이 맡았으며 레오니다스는 스파르타의 공동 왕 중 한 명으로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고도 전해집니다. 레오니다스는 직접 300명의 전사를 골랐는데 모두 자식이 있는 중년으로 죽어도 후회가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하며 신탁에 따르면 왕이 죽지 않으면 도시가 파괴된다고 하여 레오니다스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테르모필레 전투에 나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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