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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5국 2016년 6월/보스니아

[발칸여행] 유럽의 화약고 보스니아 사라예보

by 군자삼락 2016. 7. 24.

발칸여행 7일차(67)

유럽에서 가장 동양적인 도시이자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의 라틴다리, 바슈카르지아, 대성당, 모스크 등을 둘러본 일정입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 Herzegovina)의 수도 사라예보(Sarajevo)는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도시, 1973년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이에리사, 정현숙 선수의 금메달 승전보 등이 생각나는 도시로, 15세기말 오스만 투르크에게 점령당한 후 교역의 중심지와 이슬람 문화의 거점으로 발달하여 시민의 절반이 이슬람교도이며, 모스크와 옛 투르크인들의 시장 등이 관광지입니다.

 

1914628일 발생한 사라예보 사건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 청년이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를 암살하여,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이를 수락하지 않을 경우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위협 하였는데 결국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진 사건이었습니다.

 

20여 년 전 내전 때 파괴 된 건물이 아직도 사라예보 시내에 그대로 방치 되어 있습니다.

발칸 지역 중심에 위치하여 유럽의 화약고로 불렸던 사라예보는 25년 전인 1991년 세르비아군과 민병대에 의해 포위되어 포격과 함께 높은 언덕 지대에 포진한 저격수(sniper, 스나이퍼)들이 도심에 보이는 시민을 저격하여 지하 땅굴을 이용하거나 밤에만 겨우 외출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터키의 지배를 받았던 사라예보는 시민의 절반가량이 무슬림이라고 합니다.

 

현재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건물 벽에 포탄 맞은 자국들이 보입니다.

아파트 중앙에는 포탄 자국이 없는 것을 보면 아파트 옆으로 쏘았는데 명중률이 낮은 박격포라서 포탄이 아파트에 맞은 듯합니다.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에 포위된 사라예보 시민들은 시내에서 UN이 관리하고 있었던 공항까지 4개월 이 넘는 시간이 걸려서 800여 미터의 터널을 뚫어서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20여 년 전 내전 때 파괴 된 건물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사라예보는 내전으로 묘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1984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올림픽 스타디움을 공동묘지로 사용하고 있으며, 거리 곳곳에 20여 년 전의 전쟁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었습니다.

 

미술대학인 예술 아카데미(Academy art) , 밀야츠카(Miljacka) 강에 학생들이 디자인 했다는 현대적 감각의 다리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란 뜻이라고 합니다.

 

버스에서 본 라틴다리,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저격을 받은 장소입니다.

인터넷을 뒤져도 답을 얻을 수 없었는데, 바닥에 검은 돌로 장식한 무늬는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저격을 받아 사망한 자리라는 뜻으로 설치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제 버스에서 내려서 사라예보에서 살고 있다는 한국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도보 투어를 합니다.

 

강이라기보다는 청계천 같은 밀야츠카(Miljacka)

 

사라예보 구 시청사에서 1949년 국립 및 대학 도서관으로 되었는데 19928월 내전 당시 포격을 받아 파괴되고 150만권이 넘는 장서가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다가 지원금으로 시설 복구가 이루어져서 사라예보 시청의 홀과 국립 대학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난 건물입니다.

 

100여 년 전 시청사를 짓기 위해서 집터를 양보해 달라고 할 때 집주인 요구대로 원형을 유지하여 옮겨준 집, 현재는 레스토랑입니다.

 

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 장소 라틴다리(Latinska ćuprija)

1798년 세워진 라틴 다리는 보스니아를 강제로 합병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사라예보를 방문하여 오픈카를 타고 다리 옆을 지나던 도중 19세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였던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쏜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세계 대전이 시작 됩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황태자 부부가 오픈카를 타고 지나다가 저격을 당한 곳이라고 합니다.

 

 

 

사라예보 박물관 (Muzej Sarajevo)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저격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숨어 있다가 뛰어 나왔던 카페로 당시의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입니다.

 

1914황태자를 저격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와 자료사진

 

이곳에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위 계승자 페르디난트와 그의 부인 소피아를 암살하다.

 

맨 아래 사진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의 장례식 장면입니다.

 

 

 

 

 

예수 성심 대성당(Katedrala Srca Isusova)

 

 

사라예보에서 가장 큰 가톨릭 성당이라는 예수 성심 대성당,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결합된 외관과 네오 비잔틴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내부가 인상적이라고 하는데 내부 사진은 촬영하지 못했습니다.

 

사라예보 장미(Sarajevo Roses)

내전 때 포탄이 떨어져 파인 곳에 붉은색을 칠한 사라예보 장미, 전쟁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자는 메시지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Papa Giovanni Paolo II, 재위: 1978~2005)

 

 

 

 

우리나라 장기처럼 대형 체스를 즐기는 사라예보 노인들입니다.

 

 

 

 

 

가지-후스레브 베이 모스크(Gazi Husrev-begova džamija) 1531년 건축된 것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는 가장 중요한 이슬람 건축물로 중 하나인데 모스크의 이름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절 이 지역의 통치자 가지-후스레브 베이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모스크 뜰 안까지는 들어갈 수 있지만 모스크 안은 무슬림만 입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칸막이로 남녀 자리가 구별 되어 있는 모스크 입니다.

 

 

예전의 터키식 여관인 한(HAN), 정문을 들어가서 가파른 계단의 2층으로 올라가면 자 모양으로 객실이 배치되어 있는데 주 이용객이었던 상인들의 안전을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사라예보 구시가지의 메인 광장 바슈카르지아(Baščaršija)

중앙 시장이라는 뜻의 터키어인 바슈카르지아는 19세기경까지는 지금보다 두 배 정도 더 큰 규모의 시장이었으나 화재가 발생하여 대부분의 건물이 타버린 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바슈카르지아(Baščaršija) 광장 중앙에 있는 세빌리 샘

 

 

보이는 뒷산에서 내전 당시 사라예보를 포위한 세르비아 저격수들이 지나는 사람들을 조준 사격하여 낮에는 밖에 나다닐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라예보를 떠나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향하는 길, 주택 단지 뒤로(흰 원) 내전 때 희생 된 무슬림들의 공동묘지가 보입니다.

 

다음 포스팅은 7천년 역사를 가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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